[단독] 가족들과 'M&A 컨설팅'…PEF의 '수상한 자금거래'

입력 2024-03-19 10:22   수정 2024-03-20 09:47

이 기사는 03월 19일 10:22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3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굴리는 중견 사모펀드(PEF)의 오너가 포트폴리오 기업에서 자금을 임의로 사용한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컨설팅 계약을 맺어 배우자, 친동생 등 가족들에게 자금이 흘러가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각각 서로 다른 펀드로 인수한 기업 간에 자금을 무단으로 이전시키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 자금을 받아 기업 경영권을 인수하는 PEF에서 이 같은 횡령 혐의가 제기되면서 PEF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친동생과 배우자가 컨설턴트?
19일 법조계와 투자업계에 따르면 오케스트라프라이빗에쿼티(이하 오케스트라PE) 대주주이자 전 대표이사인 A씨가 횡령·배임 혐의로 형사 고소를 당했다. 2016년 설립된 오케스트라PE는 작년 글로벌 치킨 프랜차이즈인 KFC코리아를 인수해 주목받았던 운용사다.

오케스트라PE를 고소한 건 포트폴리오 회사였던 피닉스다트로 확인됐다. 오케스트라PE는 2019년 1월 글로벌 1위 다트회사인 이 회사 경영권 지분(86.3%)을 1256억원에 인수한 뒤 작년 가을까지 운영했었다.

이번 사건은 서울지방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맡았다. 수사가 시작되자 A씨는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해외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당국은 A씨가 경찰에 출석하지 않자 해외로 도피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지명통보를 내렸다. A씨는 귀국과 동시에 즉시 공항에서 소환될 수 있다.

A씨는 오케스트라PE 설립 이듬해 PEF로 인수한 기업을 통해 가족들을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오케스트라PE가 2017년 783억원에 인수한 마제스티골프가 지원 경로로 활용됐다. 마제스티골프는 인수되자마자 한 법인과 컨설팅 용역계약을 체결해 수수료 2억원을 지급했다. 이 회사는 A씨의 친동생이 대표이사로 있는 현서교역으로 2005년 설립된 무역업체다.

오케스트라PE 출신 내부고발자에 따르면, 현서교역은 2억원 중 1억은 수수료로 챙기고 6000만원은 A씨 계좌로 직접 송금했다. 나머지 4000만원은 벤치마크파트너스라는 법인을 통해 오케스트라PE에 보내졌다. 오케스트라PE에 컨설팅 비용 지급 명목이었다. 포트폴리오 회사의 공적 자금을 오케스트라PE와 A씨, 친동생이 나눠가진 셈이다. 친동생은 당시 오케스트라PE의 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였다.

자본시장법에선 위탁운용사(GP)의 이해관계인 간 거래를 엄격하게 규율하고 있다. GP의 임직원 혹은 대주주와 그의 배우자 등 이해관계인과 거래했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

오케스트라PE 자체적으로 가짜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는 의혹도 있다. A씨의 배우자가 오케스트라PE의 사업 파트너로 용역비를 받아간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오케스트라PE는 2021년 일본 국적의 배우자와 컨설팅 계약을 체결해 용역비로 1억8000만원을 지급했다. '오케스트라PE의 마제스티골프재팬 매각 컨설팅' 명목이었다.

허위로 고용 계약을 맺어 자금을 빼돌린 정황도 있다. 2022년경부터 A씨의 또 다른 한국 국적 배우자에게 급여 명목으로 월 800만원씩 송금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A씨의 부친 운전기사에게 월 350만원씩 급여를 지급한 정황도 나왔다. 내부고발인은 "회사에서 수년간 소속해있는 동안 A씨 배우자가 실제 직원으로 근무한 걸 보지 못했고, 운전기사도 실제 직원으로 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다"며 "이 배우자는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잔여 임차보증금으로 1억8000만원도 받아갔다"고 전했다.

이 같은 거래는 자본시장법상 이해관계인 간 거래 규정엔 저촉되지 않는다. PEF 펀드가 아닌 오케스트라PE 자체 자금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PEF 운용사는 자본시장법 상의 자산운용사가 아닌 일반법인이어서 이해관계인 간 거래 규제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대주주가 지분을 100% 소유했더라도 법인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하면 상법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지적이다.
투자기업 사이에 자금 이전 정황도
A씨는 오케스트라PE의 각각 다른 펀드로 인수한 포트폴리오 기업 간에 회사 자금을 무단으로 이전시킨 혐의도 받고 있다. 상대적으로 우량했던 피닉스다트와 마제스티골프 자금을 활용해 비전홀딩스 부실을 은폐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비전홀딩스는 오케스트라PE가 2018년 인수한 광고 기획·제작·대행업체다. 매각되기 직전인 2017년엔 1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인수 직후부턴 적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수십억원의 영업손실을 내고 있다.

오케스트라PE는 2019년 피닉스다트를 인수한 직후 두 회사 사이에 임대차계약을 체결시켰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비전홀딩스 사옥을 피닉스다트가 보증금 50억원, 월 8000만원에 임차하는 형태로 체결된 계약이었다. 피닉스다트 측은 "실제 임차 행위가 없었다"며 "허위 계약으로 자금을 다른 포트폴리오 기업으로 빼돌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전홀딩스는 1년 뒤인 2020년 3월 라미드그룹에 사옥을 매각하면서 마련한 자금으로 보증금을 반환했다. 이 일이 뒤늦게 펀드 투자자(LP) 사이에서 문제가 되면서 A씨는 피닉스다트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뿐만 아니라 경영권을 가진 회사들과 마케팅 계약을 맺도록 해 비전홀딩스를 우회 지원했다는 혐의도 받는다. 피닉스다트는 비전홀딩스에 마케팅비 명목으로 매달 1억원씩 총 8억원을 지원했다. 마제스티골프코리아도 경영권을 매각한 2022년까지 같은 구조로 월 1억원씩 약 3년간 마케팅비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케팅 용역의 진위를 놓고 양측의 설명이 엇갈리고 있다. 오케스트라PE 측에선 "비전홀딩스는 유튜브 홍보영상 및 다트 인게임 영상 제작, SNS 홍보 진행 등 상당한 수준의 업무를 수행했다"는 입장인 반면 피닉스다트는 "실제는 4분 남짓한 광고 영상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신뢰와 투명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PEF에서 이 같은 횡령·배임 이슈가 불거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횡령 혐의에 대해서 양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고발자는 "A씨가 오케스트라PE를 통해 횡령·배임한 것으로 추정되는 규모만 160억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케스트라PE와 A씨는 법률 대리인을 통해 "고소 내용은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해외 도피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오케스트라PE 측은 "A씨는 미국·일본 복수국적자로 애초에 한국에서 상시 거주하고 있지 않는다"면서 "원래 거주하는 해외에 있으면서 수시로 한국에 출입국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인척을 활용한 컨설팅 계약과 허위 고용에 대해서도 "일체 없었다"고 부인했다. 그는 "A씨의 배우자는 일본에 거주하고 있으며 운전기사 또한 실제 대표이사의 운전 업무를 수행했다"며 "고소인의 고소 내용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오케스트라PE는 5개의 펀드를 통해 3000억원 넘는 규모의 펀드 자금을 굴리는 운용사다. 국내 금융기관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들이 펀드 출자자(LP)로 있다. 국내에선 MG새마을금고가 가장 많은 자금을 댔고 DGB금융 등 10여곳이 자금을 댔다. 한 출자사 관계자는 "오케스트라PE 이슈로 인해 중소형 PEF에 대해선 보다 높은 투명성을 요구하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은 기자 hazzys@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